나는 매 주말 취약해진다.

나의 증상은, 하고 싶은 것 없음 / 내가 맘에 안듬 / 현재에서 나아지고 싶음 / 근데 그럴 힘이 안남

물론, 현재에서 변화하려면 내가 바뀌어야 하기에, 다양한 노력들을 해왔지만, 오히려 부작용만 많이 겪으면서 서서히 노력조차 안하게 되었던 터였다. 친구들을 만난다? 한때뿐이고 더 공허해진 시간만 있을 뿐이다. 운동을 한다? 식욕이 터져서 주말 내내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으로 끝날 뿐이다. 새로운 취미를 만든다? 힘도 없는데 괜히 수업료만 냈다가 취미로 정착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기 일수다.

여러 시도가 있었기에 이제 뭘 더 해봐야하지. 도대체 무엇이 문제지. 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어디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하지. 기쁜일도, 슬픈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는, 생명이 희미하진 나의 상태.

삶은 시간위에 떠다니는 민들레 꽃씨 같다.

적당히 계속해서 떠있어야 한다.

그래야 삶이 굴러간다.

공기 중에 떠다니면서 희노애락을 느끼고, 변화를 경험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그러면서 시간 속을 떠다니는 것이 삶이고, 그것이 생명체의 시간이다.

나의 민들레씬느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사실 지금도 떨어져 있다.

바닥에 떨어져 있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씨앗이라도, 쉽게 뜨지 않는다. 바닥과의 마찰력이 더 세서 공기 중으로 쉽게 뜨지 않는다

바닥에 있으면 아무런 변화가 없다. 감정의 변화도, 욕구의 변화도 없다. 사실 죽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살아 있음은 순환. 변화와 동의어다. 살아있는 우리는 소화 시키고 새로운 음식물을 받아들이고 배출하고,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고, 내뱉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행동을 하고, 모든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 생명체이다. 결국 죽을건데 왜 사냐? 라는 질문의 대답은 그게 살아있다는 거니까. 살아있다는 것은 죽기 전까지 . 결국 되돌아오고 결국 변하고 결국 사라질테지만 변화를 경험하고 있고 없음을 느끼는 과정의 연속인 것이다. 그게 생명인거고 그게 삶인거다.

그런데 나의 삶은 멈춰 있었다. 감정을 교류하지도 않았고, 경험을 하지도 않았고, 욕구를 순환시켜주지도 않았다. 그저 살아야 하기에 살아 있기에 존재할 뿐이다. 일을 해내고, 음식을 먹어내고. 그저 생명체이기에. 시간에 존재하고 있기에 수동적으로 살아냈다.

글쎄, 어떻게 하면 삶의 공기 중으로 떠오를 수 있을까?

지금으로써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하는 일의 의미는 뭐지? 취미를 갖는다고 해도, 취미를 갖는 의미는 뭐지? 내가 즐겁게 사는 의미는 뭐지? 산다는 건 그냥 적당히 살다 가는 것인가?